교회광장/새벽설교 요약
25년 7월 15일 (화) - 창세기 28:10-15
25년 7월 15일 (화) - 창세기 28:10-15
2025.07.1525년 7월 15일 (화) - 창세기 28:10-15 찬송가 338장 야곱이 잠에서 깨어 '하늘을 향해'일어나 차갑게 눕혔던 돌을 '하늘을 향해' 일으켜 세워 기름 을 붓자 그곳은 '하나님의 집'이 됩니다. 훗날 출애굽기는 이렇게 기록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야곱이 하늘을 향해 일어섰을 때 아브라함의 이삭처럼 언약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야곱을 떠올리며 하늘을 바라는 언약의 사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5년 7월 14일 (월) - 누가복음 17:11-19
25년 7월 14일 (월) - 누가복음 17:11-19
2025.07.1425년 7월 14일 (월) - 누가복음 17:11-19 찬송가 429장 검사는 모든 일 평범한 일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에서는 감사가 끊이지 않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감사는 그리스도인이 삶에서 실행해야 할 귀한 덕목입니다. 우리는 큰 병에 걸렸거나 나음을 받거나 위기를 넘기는 등. '큰일'에는 감사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감사의 기준을 너무 크고 높은 곳에 두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밤에 잠이 드는 것과 아침에 눈을 뜨는 것도 감사한 일입니다. 이렇듯 당연하고도 작아 보이는 일에서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고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감사는 우리가 누리는 복의 규모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중요한..
25년 7월 11일 (금) - 창세기 2:1-3
25년 7월 11일 (금) - 창세기 2:1-3
2025.07.1125년 7월 11일 (금) - 창세기 2:1-3 찬송가 43장 하나님은 창조 후에 안식에 들어가십니다. 더불어 아담과 하와도 창조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곧 안식이 되어버립니다. 왜 하나님은 창조된 사람에게 먼저 안식을 하게 하셨을까요? 안식이라는 의미는 쉼이라는 뜻도 있지만 '중단되다. 멈추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안식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쉬신다는 뜻 외에도 창조 사역을 마치신 뒤 멈추셨다는 뜻도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멈추라고 하십니다. 주어진 사명도 계획도 열정도 다 잠시 멈추라고 하십니다. 안식일을 따로 구별해서 삶에 멈춤을 주는 날로 삶으로 하십니다. 그리고 멈춤의 이유를 하나님이 만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이 멈추셨으니 우리도 멈추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은 창조 때..
25년 7월 10일 (목) - 디모데후서 1:3-8
25년 7월 10일 (목) - 디모데후서 1:3-8
2025.07.1025년 7월 10일 (목) - 디모데후서 1:3-8 찬송가 336장 사람은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어 합니다. 바울에게는 디모데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제2차 전도 여행 중에 루스드라에서 만난 디모데는 바울과 늘 동행하는 충실한 동역자였고 바울에게 가장 신뢰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물려받은 깨끗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의 담임으로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율은 거짓 교사들이 에베소 교회 안에 들어와 성도들과 교회의 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바율은 디모데가 건전한 말씀으로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우고 성도들을 잘 가르치도록 권면하기 위해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그 편지가..
25년 7월 9일 (수) - 마가복음 6:14-29
25년 7월 9일 (수) - 마가복음 6:14-29
2025.07.0925년 7월 9일 (수) - 마가복음 6:14-29 찬송가 4449장 헤롯은 동생의 아내를 빼앗고 재혼한 것과 세례 요한을 의롭게 여기면서도 자신의 무모한 오만 때문에 그를 참수하는 두 가지 악수를 두었습니다. 헤롯은 지리를 인정하면서도 자신의 지위와 체면 정치적인 야욕 때문에 악수를 둔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옳은 줄 알면서도 이 길이 진리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성공과 지위 체면 때문에 악수를 둡니다. 우리 인생의 묘수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인정하고 사는 것이 인생의 묘수입니다. 예수님만이 진리이시기 때문입니다
25년 7월 8일 (화) - 여호수아 3:1-5
25년 7월 8일 (화) - 여호수아 3:1-5
2025.07.0825년 7월 8일 (화) - 여호수아 3:1-5 찬송가 586장 성경에 나오는 라합 이야기는 죄인이 구속의 역사에 참여하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가나안 사람이고 우상 숭배자였던 기생 라합이 어떻게 이스라엘 민족의 계보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까요? 젊은 두 남자가 라합의 집에 묵으려고 찾아옵니다. 그때 라합은 그들이 이스라엘 사람인 줄 알아차렸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 라합의 마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패배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자리 잡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셨고 싸울 때도 지도하셨고 그들의 적을 당황하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 다. 그래서 라합은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생명을 걸고 정탐꾼을 숨겨 주었습니다. 그 일에 대하여 히브리서 기자는..
25년 7월 7일 (월) - 이사야 45:1-7
25년 7월 7일 (월) - 이사야 45:1-7
2025.07.0725년 7월 7일 (월) - 이사야 45:1-7 찬송가 384장 애굽에서 고통 받던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를 보시고 신음소리를 들으신 하나님은 그들을 탈출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통하여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번번이 불순종함으로 언약을 어깁니다.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여 환난을 겪으면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여 평안을 얻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죄에 빠져 율법을 등지고 살아가다가 예루살렘의 멸망과 바벨론 포로라는 크나큰 환난을 만납니다.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순간에 하나님은 이방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를 사용하시어 바벨론을 멸망시키십니다. 그리고 돌이킨 이스라엘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반복적인 불순종과 습..
25년 7월 4일 (금) - 에스겔 37:5-10
25년 7월 4일 (금) - 에스겔 37:5-10
2025.07.0425년 7월 4일 (금) - 에스겔 37:5-10 찬송가 182장 오늘 본문 말씀은 살아난다고 하는 것은 단지 육신의 모양만 갖추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줍니다. 진정한 회복은 그 속에 생기, 즉 하나님의 영이 임해야 가능합니다.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널브러진 뼈들이 영락없는 사람의 모습으로 변해도 그 속에 생기가 없으면 마른 뼈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 생기가 있다면 마른 뼈와 같은 우리의 인생도 극히 큰 군대로 설 수 있습니다. '생기'가 있다면 말 입니다. 혹시 마른 뼈와 같은 여러 아픔과 문제들을 놓고 외형의 변화 겉모습의 회복만을 위해 기도했다면 이제 그 속의 생기를 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전히 회복되고 더 욱 ..
25년 7월 3일 (목) - 고린도후서 2:14-17
25년 7월 3일 (목) - 고린도후서 2:14-17
2025.07.0325년 7월 3일 (목) - 고린도후서 2:14-17 찬송가 89장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낸 두 번째 편지에서 자신과 동역자들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 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향기는 저절로 나는 것이 아닙니다. 꽃은 하나님이 디자인하신대로 DNA에 의해서 고유한 향기가 나지만 사람의 향기는 가슴에 무엇을 품고 그의 손과 마음이 누구와 닿아 있느냐에 따라 그 향기가 다릅니다. 이것이 꽃의 향기와 사람의 향기가 다른 이유입니다. 꽃향기나 향수냄새는 바람결에 따라 떠다니지만 사람의 향기는 마음에 머물러 마음을 움직입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향기가 나고 있습니까? 생명을 살리는 사랑의 향기로 가득한 삶을 빛어가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25년 7월 2일 (수) - 마태복음 10:40-42
25년 7월 2일 (수) - 마태복음 10:40-42
2025.07.0225년 7월 2일 (수) - 마태복음 10:40-42 찬송가 428장 구약에서는 부모를 공경한 자가 생명이 길어지고 복을 누린다고 합니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공경의 의미를 달리 해석합니다. 부모 공경은 종교적 동시에 윤리적 명령이며 그래서 실제적 실천으로 부모를 돌보는 것이 하나님의 합당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모 공경을 종교적 명령으로만 적용함을 경계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점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영접'이란 종교적 명령입니다. 선지자를 영접하거나 의인을 영접하면 그에 상응하는 '상'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영접의 대상을 지극히 작은 자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접은 종교적인 전통에만 국한..
25년 7월 1일 (화) - 예레미야 3:1-5
25년 7월 1일 (화) - 예레미야 3:1-5
2025.07.0125년 7월 1일 (화) - 예레미야 3:1-5 찬송가 425장 유다가 바벨론의 포로가 되기 직전에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택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셨습니다. 부르심에 응답한 예레미야에게 큰 어려움이 닥친 모습을 줍니다. 위기를 맞은 예레미야는 주님께 불평합니다. 주님께 속았고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되었다며 다시는 하나님을 선포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외치지 않겠다고 결심해 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의 중심에서 불타올라 전하지 않고서는 버틸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거부하기로 작정하였지만 하나님을 거부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반전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반응은 말씀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
25년 6월 30일 (월) - 마태복음 9:35-38
25년 6월 30일 (월) - 마태복음 9:35-38
2025.06.3025년 6월 30일 (월) - 마태복음 9:35-38 찬송가 216장 2000여 년 전 유대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압제 아래 살았습니다. 로마 총독과 포악한 군대의 치리 아래에서 허덕였습니다. 많은 세금을 징수당했고 각종 대규모 건설에 동원되어 강제 노역을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성전세와 제물도 감당해야 했습니다. 가난한 갈릴리 지역 사람들을 무척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육체적으로도 고생스러웠지만 정신적으로 더더욱 버거웠습니다. 자신들을 이끌어 줄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목자 없는 양' 이것이 그들의 처지였습니다. 그러니 그들의 영혼은 늘 불안하고 삶은 고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삶의 지표도 없이 무의미하게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와 그들을 진정 "불쌍히" 여기신 분이 있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