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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주 주일설교
11월 2주 주일설교
2024.11.12하나님을 맛보아 알지어다 시편 34:8-10 & 설교자 : 염순옥 목사
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2024.11.112024.11.15 (금) 사도행전 9:10-19 찬송가 366장 사도 바울에게 영혼의 고통을 씨어 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나니아입니다. 다메식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바울은 그 빛 때문에 며칠 동안 앞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의 인도를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였는데 그대 마침 하나님의 지시로 아나니아가 그를 도와줍니다. 단지 육신의 치료만 도운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전에 자신에게 박해받은 수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아픔을 알게 되고 속죄와 치유의 과정을 거칩니다. 사도 바울이 열두 사도 앞에서 사도로 인정을 받고 전도 여행을 할 때 조력자 바나바가 필요했듯이 그가 새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는 영적 간병인 아나니아의 조력이 필요했습니다. 내 주위에는 바울처럼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
2024.11.14 (목) 시편 99:1-9
2024.11.14 (목) 시편 99:1-9
2024.11.112024.11.14 (목) 시편 99:1-9 찬송가 274장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고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거룩하시기에 모든 일을 공의롭고 정의롭게 행하십니다. 공의란 하나님과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고 그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고 심판하십니다. 반면 정의는 사람 간의 관계에서 사용됩니다. 그러나 공의와 정의가 따로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의 공의가 깨질 때 나와 다른 사람 간의 정의도 깨집니다. 이는 아담이 죄를 지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하며 인간관계도 깨진 것에서 잘 드러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공의가 깨지면 사람과의 정의도 제대로 세워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거룩하신 하나님은 심판도 하지만 용서해 주시..
2024.11.13 (수) 하박국 2:1-4
2024.11.13 (수) 하박국 2:1-4
2024.11.112024.11.13 (수) 하박국 2:1-4 찬송가 542장 우리 중에 믿음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조금 더 강한 믿음과 약한 믿음이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강한 믿음이든 약한 믿음이든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인내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다고 당장 열매가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열매는 일찍 열기기도 하고 어떤 열매는 늦게 열릴 수도 있습니다. 고난을 만났을 때 우리가 힘든 이유는 ’늦게‘ 열리는 열매 때문일 경우가 많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원망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 자체를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원망 자체가 믿는다는 증거입니다. 다만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인내하며 가꾸면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인내가 곧 믿음입니다. ’비록 더딜지..
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2024.11.112024.11.12 (화) 누가복음 18:9-14 찬송가 364장 금식은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종교의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예수님 말씀과 달리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를 자랑합니다. 금식을 통해 정기적으로 육신의 본능을 절제하는 신앙의 우월성을 드러내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세리는 감히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가슴을 치며 하나님께 불쌍히 여겨 달라고 기도하고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엎드려 눈물을 흘립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보다 세리가 의롭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이 ’자기 의‘를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자기 스스로를 자랑하는 ’자기 의‘는 마음과 언행에서 ’하나님‘보다 ’나 자신‘을 우선하는 것에서 드..
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2024.11.112024.11.11 (월) 데살로니가전서 1:1-10 찬송가 400장 믿음의 역사란 언제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말하고 행동하며 사는 것입니다. 사랑의 수고는 그저 감정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희생과 헌신이 뒤따르는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한 소망의 인내는 언젠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늘 나에게 주어진 무거운 현실을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 소망, 사랑은 말이나 지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만 가능합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죄인이 회개하고 삶을 돌이켜 구원에 이르게 하는 주님의 권능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이 일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도록 역사하며 도우십니다. 그리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이들에게 큰 확신도 주십니다. ..
11월 1주 어린이설교
11월 1주 어린이설교
2024.11.05무감각한 세대여 로마서 12:2 & 설교자 : 이은재 선생님
11월 1주 주일설교
11월 1주 주일설교
2024.11.05그리스도인은 기대이상입니다 고린도전서 15:9-10 & 설교자 : 염순옥 목사
2024.11.8 (금) 미가 3:5-12
2024.11.8 (금) 미가 3:5-12
2024.11.042024.11.8 (금) 미가 3:5-12 찬송가 215장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과 뜻을 전하고 선포하도록 택하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선지자들입니다. 하나님은 때마다 선지자들을 보내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꾸짖으셨습니다. 부정과 불법을 행하는 백성을 책망하셨습니다. 선지자는 이렇게 하나님의 대변자였습니다. 그런데 선지자 둘ㅇ에 부정과 불법을 행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그들의 행태를 고발합니다. 반면 미가는 어떤 선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서 정의와 용기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꾸짖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는 불법이 없습니다. 부정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히 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리..
2024.11.7 (목) 요한복음 13:34-35
2024.11.7 (목) 요한복음 13:34-35
2024.11.042024.11.7 (목) 요한복음 13:34-35 찬송가 220장 계명은 구약시대에도 많이 있었고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으로 요약해 주기도 하신 예수님이 왜 ’새 계명‘이라고 하셨을까요? 이전과 차이점이 있다면 ’서로 사랑‘입니다. 율법적인 의무감에서가 아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끝까지 사랑,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는 죽기까지 사랑입니다. 일방적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예수님의 새 계명은 한쪽만 주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사랑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로서 당연한 기도 생활이나 해박한 성경 지식, 성실한 교회봉사 정기적인 헌금 생활이..
2024.11.6 (수) 레위기 19:1-2, 15-18
2024.11.6 (수) 레위기 19:1-2, 15-18
2024.11.042024.11.6 (수) 레위기 19:1-2, 15-18 찬송가 299장 레위기 19장은 거룩함에 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거룩함이 그 다음 말씀인 공정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전제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거룩하지 않고는 다른 사람들을 공정과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로 살아가려면 우리는 반드시 거룩해야 합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그 성품을 닮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서 세상고사 구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또 다른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을 닮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웃을 사랑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야 하는데 첫째 공의롭게 대하는 것입니다. 둘째..
2024.11.5 (화) 잠언 30:7-9
2024.11.5 (화) 잠언 30:7-9
2024.11.042024.11.5 (화) 잠언 30:7-9 찬송가 430장 아굴이 하나님께 죽기 전에 꼭 이루어 달라며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말리 하옵시며” 그런데 왜 아굴은 굳이 이 기도를 한 것일까요? 아굴은 한 번도 거짓말하지 않는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성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거짓말과 더불어 멀리하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 있는데 바로 ‘헛된 것’입니다. 아굴은 거짓말 중에서도 헛된 것을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거짓말 중에서도 헛된 것은 ‘자기 자신을 속고 속여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일은 더더욱 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기 위해 남을 속이는 자는 적어도 자신이 죄를 짓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속이는 자는 죄를 짓고도 ..